‘2020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서머 정규 시즌을 기준으로 한 시상식 ‘LCK 어워즈’의 투표 결과가 3일 공개됐다. LCK 어워즈에는 방송 관계자, 선수와 코치진, 취재진 등 40여 명이 심사위원단으로 참여한다. 국민일보는 정기 취재매체 자격으로 투표권 1개를 얻었다.
프로 스포츠의 시상식은 종목을 불문하고 늘 논란을 낳는다. 그래서 어떤 이유로 어떤 선수에게 표를 행사했는지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봤다. 각 부문별로 1위부터 5위까지 뽑은 경위를 한꼭지 기사를 통해 전한다.
영 플레이어상 투표는 MVP 투표와 궤가 크게 다르지 않다. 2000년 7월22일생인 ‘쇼메이커’ 허수는 로스터 등록일(지난 6월) 당시 만 19세였기에 가까스로 영 플레이어상 수상 조건을 충족했다.
허수는 올 시즌 LCK의 어느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빛났다. 선수 개인으로서도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다. ‘캐니언’ 김건부는 자신의 포지션에서 가장 독보적인, 경쟁자가 없는 선수였다. ‘쵸비’ 정지훈은 우승후보팀의 에이스로 거듭났고, ‘라이프’ 김정민 또한 인상적인 여름을 났다.
베스트 코치상은 감독과 코치가 모두 수상 후보로 오른다. 지난 시즌 국민일보는 감독만을 투표 대상으로 한다는 나름의 원칙을 만들었다. 하지만 올 시즌 담원의 파괴적인 경기력은 오롯이 감독 혼자서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예외적으로 양대인 코치에게 2위 표를 행사했다.
3위 표의 대상으로 주영달 감독과 김대호 감독을 놓고 고민했다. 결론적으로 최우범 전 감독이 팀을 떠나면서 어수선해졌던 팀 분위기를 추스르고, 결국 14승4패(세트득실 +19)의 호성적으로 시즌을 마친 점에 가산점을 줘 주영달 감독에게 3위 표를 줬다.
결승 직전이 가장 불안했던 스프링 시즌과 달리, 젠지의 이번 정규 시즌은 끝으로 갈수록 편안했다. 선수 간 역할이 잘 분배됐고, 자신들만의 강점(넓은 챔피언 폭과 강력한 라인전)을 잘 살리는 게임을 했다.
김대호 감독은 올여름 동안 또 한 번의 마술쇼를 선보였다. 아마추어 선수를 올 LCK 팀급의 정글러로 성장시켰으며, 15승3패(세트득실 +19)를 수확해 2위로 정규 시즌을 마쳤다. 다만 기세등등했던 1라운드에 비한다면 2라운드는 아쉬움이 남았다.
말장난 같겠지만, 김정수 감독이 스프링 시즌 우승팀을 4위로 주저앉힌 거라 보지 않았다. 포스트 시즌 진출을 기대할 만한 수준의 로스터로 스프링 시즌 정상에 올랐다고 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스토브 리그 당시 T1에 대한 평가를 떠올려야 한다. 일부 선수들이 메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 속에서 김 감독은 ‘클로저’ 이주현을 과감하게 기용, 가까스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탑라이너 퍼스트팀은 이견의 여지 없이 ‘너구리’ 장하권의 것이라고 봤다. 장하권 본인은 종종 자신의 경기력에 만족하지 못한 듯했지만, 그랬을 때의 경기력마저도 다른 9개 팀의 탑라이너들보다 뛰어났다.
‘칸나’ 김창동과 ‘라스칼’ 김광희 중 한 명을 고르는 건 취향의 문제였다. 그만큼 두 선수 모두 훌륭한 시즌을 보냈고, 결이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로 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더 어려운 여건 속에서 팀을 캐리해야 했던 김창동을 고심 끝에 2위로 뽑았다.
‘리치’ 이재원은 팀이 장기 계약을 제안한 이유를 증명했다. 강한 상대와 붙었을 땐 라인전에서 힘을 못 쓰기도 했지만, 운영과 한타 단계에서 주도적으로 게임을 풀어나간 모습에 가산점을 줬다. 팀이 상대방에 끌려다닐 때 주도적으로 한타를 여는 건 몹시 어렵다. 다이나믹스는 시즌 대부분의 경기를 상대방에게 끌려다녔다.
시즌 개막 전 미팅에서 만난 다이나믹스 관계자는 “한타 때 리치만 보는 각이 있다”며 그의 활약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 말은 올 시즌 다이나믹스를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적나라하게 설명하는 한 문장이 됐다.
‘도란’ 최현준을 향한 팬과 관계자들의 잣대는 종종 가혹하다. 그러나 5위보다 높은 순위의 표를 받기엔 라인전에서 종종 쉽게 무너졌다. 아울러 ‘스맵’ 송경호에게 ‘아차상’을 주고 싶다. 베테랑 탑라이너는 라인전에서도, 운영 단계에서도 솔리드하고 노련하게 플레이했다.
‘캐니언’ 김건부는 올 시즌 ‘월드 클래스’로 평가받을 만했다. 한 시즌 동안 김건부를 여러 차례 인터뷰하면서 느낀 건 그가 늘 명확한 근거에 기반해서 플레이하며 게임을 논리적, 수학적으로 풀어나간다는 것이었다.
김건부의 동선 설명은 때때로 기피 포지션인 정글러를 매력적인 포지션으로 여겨지게까지 했다. 기자는 그를 따라 정글러로 포지션을 변경했다가 플레티넘1에서 플레티넘4로 수직강등됐다. 트런들은 대놓고 선픽해도 좋다는 그의 말을 믿은 게 화근이었다.
2, 3, 4위 표를 놓고는 ‘클리드’ 김태민, ‘표식’ 홍창현, ‘커즈’ 문우찬을 놓고 고민해야 했다. 세 선수 모두 고저가 있는 시즌을 보냈다. 김태민이 가장 꾸준했다고 판단해 2위 표를 줬다.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홍창현의 몫이라 여겼지만, 그는 시즌 막바지에 흔들렸다. 반대로 문우찬은 시즌 막바지 T1의 연승행진에서 가장 빛났다.
‘스피릿’ 이다윤은 이미지의 희생양이란 생각을 이따끔 한다. ‘월클좌’라는 조소 섞인 별명과 강팀 상대로 무기력했던 몇 번의 게임이 그에 대한 평가를 낮춘다. 그는 좋은 쪽으로나, 나쁜 쪽으로나 아프리카의 순위에 걸맞은 활약을 했다.
‘쇼메이커’ 허수는 DRX와의 1라운드 대결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날아다녔다. 심지어 그 경기에서도 이긴 세트는 미드 캐리를 보여줬다. 그는 모든 챔피언을 다룰 수 있고, 모든 미드라이너를 상대로 라인전을 이길 수 있다. 그의 유일한 적은 큰 무대를 마주했을 때의 중압감뿐이다. 그리고 경험이 쌓임에 따라 이 약점마저도 희미해지고 있다.
‘쵸비’ 정지훈과 ‘비디디’ 곽보성 중 하나를 뽑는 것 또한 취향에 따라 갈리는 일이었다. 포스트 시즌에선 정지훈이 승리를 거뒀지만, 이번 투표는 정규 시즌 활약을 기준으로 삼았다. 곽보성이 POG 포인트에서는 더 앞섰다. 두 선수는 비슷한 챔피언 폭으로 비슷한 수준의 플레이를 선보여 비슷한 성적표를 받았다. 다만 정지훈의 두 어깨가 더 무거웠다고 판단, 고심을 거듭한 끝에 그에게 2위 표를 줬다.
‘플라이’ 송용준은 개인 커리어 하이라 불릴 만한 시즌을 치렀다. 매력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페이커’ 이상혁은 특정 챔피언을 골랐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간 경기력 차이가 컸다. 이름값에 못 미치는 시즌을 보냈지만, 경쟁자 ‘페이트’ 유수혁이나 ‘쿠잔’ 이성혁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클로저’ 이주현은 최소 세트 기준(18세트)을 채우지 않아 수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올해 여름 ‘룰러’ 박재혁은 2017년보다 더 좋은 선수였다. 2017년 삼성 갤럭시의 바텀 듀오는 모든 라인전을 이기진 못했다. 그러나 2020년의 젠지 바텀 듀오는 전부 이겼다. 그는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헤비급 챔피언처럼 굴었고, 가끔 ‘레고를 삼키는’ 플레이가 나오면 화끈한 앞비전으로 레고를 소화시켜버렸다.
‘고스트’ 장용준은 담원을 위해 맞춤 제작된 원거리 딜러처럼 플레이했다. 혹자는 담원의 원거리 딜러 자리를 놓고 ‘원딜의 로망’이라고 했지만, 기자는 담원의 서포터야 말로 ‘서폿의 로망’이라고 생각했다. 저레벨에 로밍을 가도 불만이 없고, 한타 때 앞라인을 물어도 끝까지 죽지 않는 원거리 딜러가 있으므로.
또 다른 ‘원딜의 로망’ ‘데프트’ 김혁규는 올 시즌 밴픽에서도, 게임 내에서도 팀을 위해 많은 걸 희생했다. 그의 라인전이 예전만큼 압도적이지 않은 건 그의 메카닉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예전보다 더 많은 걸 희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테디’ 박진성과 ‘에이밍’ 김하람은 올 시즌 결과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진성은 언제나처럼 견고했지만 팀이 그에게 바란 건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김하람 역시 종종 번뜩이는 플레이를 선보였지만 팀을 포스트 시즌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고스트’ 장용준이 담원의 브레이크였다면 ‘베릴’ 조건희는 담원의 액셀러레이터였다. 올 시즌 담원의 상체가 라인전을 이기는 건 상수였는데, 이때 만들어진 스노우볼이 더 빠르게 굴러가게끔 하는 역할을 조건희가 해냈다. 또 팀이 단식 세나를 골랐을 땐 웬만한 탑라이너보다 더 능숙하게 탱커와 브루저를 다뤘다. 그는 축구의 ‘펄스 나인’이나 농구의 ‘스트레치 빅맨’처럼 자신이 맡은 포지션에 대한 상식을 깼다.
‘라이프’ 김정민은 ‘룰라’ 듀오의 강력한 라인전 한 축을 담당했다. 시즌 전반을 놓고 봤을 때 그가 ‘케리아’ 류민석이나 ‘에포트’ 이상호보다 좋은 활약을 펼쳤다고 봤다. ‘구거’ 김도엽은 바드가 주류 픽이었을 때, 다이나믹스가 연승을 이어나갔을 때, 때로는 팀이 연패에 빠졌을 때도 플레이메이커로서 제 역할을 해낸 점을 높게 쳤다.
MVP 투표는 영 플레이어 투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올여름 ‘쇼메이커’ 허수가 협곡에서 솔로 킬을 따낼 수 없었던 상대는 바론 뿐이었다. ‘캐니언’ 김건부는 종종 상대 정글러와 3레벨 이상 차이를 벌렸고, 아프리카와의 1라운드 경기에선 5레벨 이상 앞서나가기도 했다.
‘너구리’ 장하권은 팀이 상대 탑을 뚫어주길 요구하면 군말 없이 뚫었다. 여기에 큰 가산점을 줬다. 팀이 버티는 역할을 맡겼을 때 버틸 수 있는 탑라이너는 많지만, 팀이 뚫어달라 했을 때 뚫을 수 있는 탑은 전 세계를 찾아 봐도 거의 없다. 리그 수준을 불문하고 그렇다. 그가 칼챔을 해서 뚫을 수 있었던 게 아니라, 뚫을 수 있어서 팀이 그에게 칼챔을 맡겼다는 게 기자의 예측이다.
‘쵸비’ 정지훈을 ‘비디디’ 곽보성보다 위에 둔 이유는 미드라이너 투표해서 밝힌 바와 같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담원이 없었다면 시즌 MVP를 받고도 남을 만한 활약을 올여름 내내 보여줬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September 03, 2020 at 12:05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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