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측에서 제73회 영화제 공식초청작 56편을 발표했다. 알려졌다시피, 코로나19 판데믹 사태에도 영화제를 강행하겠단 뜻은 아니다. 영화제는 열리지 않는다.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등 각종 수상작도 선정하지 않고, 애초 경쟁부문, 비경쟁부문 등 구분도 없다. 다만 공식 초청받은 56편 영화들은 영화마켓에 나가거나 베니스, 베를린 등 여타 영화제에 출품될 시 칸영화제 공식로고와 ‘Cannes 2020’ 표시를 쓸 수 있게 된다.
진짜 별것 아닌 듯한 보상인데, 그거라도 얻고 싶어 전 세계에서 무려 2067편 영화가 출품됐다. 칸영화제 ‘브랜드 딱지’ 위력을 방증해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거기서 3%에 해당하는 56편만이 칸의 선택을 받아 공식초청을 얻는 데 성공했다. 참 콧대 높은 영화제다.
그런데 잘 보면 저 경쟁을 뚫은 초청작들에도 나름 ‘등급’이 존재한단 인상이 강하다. 먼저 ‘The Faithful(충실한 이들)’ 섹션으로 과거 한 번이라도 칸에 초청됐던 감독들 영화 14편을 묶었다. 그리고 ‘The Newcomers(신참들)’ 섹션으로 칸에 처음 초청받은 감독들 영화 14편을 더 꼽았다. 나머지 섹션은 신인감독, 애니메이션, 코미디 등으로 첫 두 섹션과 중복될 수 있는 조건이다. 사실상 첫 두 섹션이 ‘만약 칸영화제가 제대로 열렸더라면 경쟁부문에 들어갔을 영화들’이라 보는 게 맞다. 칸영화제 경쟁부문 선정 작품은 그간 20편 남짓이었으니, 두 섹션 28편 중 몇 편 걸러내고 경쟁부문이 결정됐으리라 예상해볼 수 있다.
흥미로운 건 여기서부터다. 저 28편 면면을 돌아보면 이번 칸영화제 전반적 경향성과 칸에서 바라보는 한국영화 포지셔닝이 꽤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위 28편 중 18편이 유럽영화다. 전체 64%다. 칸영화제의 유럽편중은 계속된단 방증이다. 아무리 경쟁부문 심사위원들을 전 세계에서 불러 모은다 해도, 그 전 공식초청작 선정단계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버리면 결과도 별수 없이 유럽편중으로 나오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20년간 20편 황금종려상 수상작 중 70%에 달하는 14편이 유럽영화였다. 애초 유럽서 열리는 3대 국제영화제 중 유럽편중이 가장 극심한 게 칸이다. 2018년 일본의 ‘어느 가족’, 2019년 한국의 ‘기생충’으로 2년 연속 아시아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게 기적적인 일이었다. 올해는 안 봐도 유럽영화 중심으로 어떻게든 돌려놓았을 터다.
다음, 더 관심을 끄는 게 한국영화에 대한 칸 측 입장이다. 올해 칸에 공식초청 된 한국영화는 2편, 연상호 감독의 ‘반도’와 임상수 감독의 ‘헤븐: 행복의 나라로’다. 둘 다 ‘The Faithful’ 섹션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둘은 같은 섹션 다른 영화들과 사뭇 결이 다르다.
대표적으로, 똑같이 ‘The Faithful’ 섹션에 2편을 올려놓은 일본을 보자. 가와세 나오미와 후카다 코지 신작들이 선정됐다. 그런데 둘 다 일본 내에서 대중과는 철저히 괴리된 아트하우스 작가들이다. 그나마 후카다는 일본비평계에서나마 평가는 받지만, 가와세는 그조차도 아니다. 일본 내에선 변변한 상조차 타본 적 없다. 딱 ‘칸에서만 사랑받는’ 특이한 경우, 어떤 의미에선 일반 아트하우스 작가들보다도 대중괴리 정도가 더 심하다.
물론 다른 나라 영화들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미국영화를 내놓은 웨스 앤더슨과 스티브 맥퀸 정도를 제외하면 그렇다. 대중과는 상당 부분 괴리된, 그림으로 그린 듯한 아트하우스 작가들이 절대다수다. 그러나 보다시피, 한국은 다르다. 연상호 감독은 대체 어떻게 ‘부산행’ 속편 격 좀비 블록버스터 ‘반도’가 공식초청 됐는지 의아할 정도로 전형적인 대중 장르영화 작가다. 임상수 감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찌 됐건 대중 화법으로 얘기하는 작가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바람난 가족’ ‘하녀’ 등 뚜렷한 흥행성공작을 갖고 있고, 바로 전작 ‘나의 절친 악당들’ 역시, 비록 흥행엔 실패했지만, 철저히 대중 화법을 구사하는 액션코미디였다.
앞으로 칸에선 ‘이런 영화들’을 한국 엔트리로 고르겠단 신호로도 충분히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반도’까지 공식알림 상 첫 번째로 소개되는 섹션에 넣었단 점에서 더 그렇다. 상당 부분 칸에서 미국영화를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다고까지 볼 만하다.
확실히 칸에서 미국영화는 사실상 ‘특별취급’ 엔트리다. 그간 경쟁부문에 초청된 미국영화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다른 초청작들과는 다른 결을 지닌 경우가 워낙 많았다. 예컨대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 ‘슈렉’도 경쟁부문에 초청된 바 있다. 또 폴 버호벤의 ‘원초적 본능’,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씬 시티’, 드니 빌뇌브의 ‘시카리오’ 등도 경쟁부문에 입성해왔다. 개성적 스타일을 갖춘 상업영화, 아니 그저 완성도 높은 상업영화이기만 해도 ‘미국’ 딱지가 붙으면 ‘그쪽 분야 전문장인’ 차원에서 예우해주며, 일단 불러 다양성을 확보하려 해왔다.
이제 그 비슷한 스탠스를 한국영화도 입게 된 인상이 강하다. 어찌 됐건 여전히 하마구치 류스케 등 아트하우스 작가들만 발굴하려 하는 일본 등 여타 국가들에 대한 태도와는 크게 다르다. 미국처럼 대중적 웰메이드 영화 잘 만드는 나라로서 접근하려는 태도가 역력하다. 상당 부분 ‘기생충 쇼크’ 영향이 컸다고 해석될 수 있다. 칸에서 시작해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받고, 전 세계에서 2억5700만 달러를 벌어들인 ‘대중적 웰메이트 영화 표상’ 말이다.
칸영화제의 이 같은 태도 변화가 향후 한국영화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진 아직 미지수다. 어찌 됐건 한국 대중문화산업 ‘속성’ 자체는 잘 짚은 판단이라 볼만하다. 어느 장르건 하이아트 지향 씬은 부실한 대신, 메인스트림 씬에서 언더그라운드 경향을 흡수해 대중적이면서도 개성적인 콘텐츠로 소화해내는 분위기란 점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방탄소년단, ‘기생충’ ‘사랑의 불시착’ 등이 가장 국제경쟁력 있는 글로벌 콘텐츠로 거듭나는 환경.
영화산업만 따로 놓고 봤을 땐 딱 ‘기생충’ 기점으로 시각이 전혀 달라질 수 있겠다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돼가고 있다. 한국영화의 해외시장 및 국제영화제 공략 관련 ‘뉴노멀’은 이렇게 새로 씌워지고 있는 셈이다. 이제 한국 측 대응 변화만이 남았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사진=‘반도’, ‘행복의 나라’ 포스터 및 스틸컷
스포츠월드>
June 14, 2020 at 11:1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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